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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먼저고, 물질은 필수다
글을 썼다가 지운다. 하찮다. 그림을 그릴려다가 관둔다. 귀찮다. 카메라는 가방에 며칠 묵히고 있다. 지겹다. 기획서를 틈틈히 쓴다. 쓸만하다. 도선이와 필담을 간간히 나눈다. 나눌만하다. TV판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몇 편씩 본다. 볼 만하다. 매주 로또를 꼭 한 게임씩 산다. 끈질기다. 매일낮 명상수련을 중구난방으로 한다. 얌체같다. 매일밤 의념실험을 의무적으로 한다. 기대된다. 하루하루가 파도타기 같다. 울렁울렁 내 宇宙지붕에 먼지만 쌓인다. 쿨럭쿨럭 이번 생에 끝내고 싶다. 알송달송
어디든 그렇겠지만 화천엔 눈을 돌리는 곳마다 나무와 산이 있다. 오늘도 출근하는 동안 수천억만그루의 나무를 보았다. 모두 제각기이지만 동시에 모두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고 있다. 사람인 우리도 마찬가지같다. 모두 제각기이지만 동시에 모두 행복을 향해 가지를 뻗고 있다. 근데 자라면서 뻗고있음에 착목하기보다는 자신의 키나 굵기, 색깔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 바람에 사방팔방 펄럭이는 생각이라는 이름의 나무가지와 잎사귀가 자신의 전부인양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다. 그러나 생각은 나를 규정할 수 없다. 그런데도 생각과 언어 이전의 나를 그 좁은 생각 안에만 가둬놓으려고 한다. 고민과 걱정, 스트레스의 주범은 바로 이 놈의 생각인게 확실하다. 1분만이라도 생각을 멈춰보려 한다. 컵라면 기다리는 시간조..
그동안 너무 자주 드러내놓고 살았나보다. 공유, 병렬, 수평의 시선으로 살고 싶어였기에 어쩌면 당연한 행동이었으리라. 이제 말수가 줄고, 표현에 자체검열도 생기고, 비밀이 생긴다. 더 큰 공유, 더 많은 병렬, 더 넓은 수평의 시선을 가지려하니 이 또한 당연한 과정인 듯 싶다. 보이고 들리는 것들에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까지 품으려 할수록 고독은 짙어진다. 그래도 모두 함께 같이 가야한다. 어머니 대지는 늘 우릴 놓아주려 하지만 그래서 인간은 다시 맨발로 태어나나보다. 물처럼 살아야하겠지만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
말수가 줄었다. 그렇게 대화하길 좋아하더니 혀도 입도 이제 지쳤나보다. 화천오지에서 혼자사니 말벗도 없어 더 그런지 모르겠다. 대신 묵언수행하듯 혼자 대화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이런 랍쇼가 스스로 바보같을 때도 있다. 심지어 자기전 노트에다 누군가와 필담까지 나눈다. 같은 단어를 사용해도 뜻이 서로 달라 말이 통하지 않는 친구보다 말이 없어도 감만으로도 서로 이해가 되는 친구는 바로 자기 자신 뿐인 것 같다. 랍쇼는 요즘 고독하지만 외롭지는 않다. 혼자지만 매일 홀로가 아니다. 그 누군가가 고맙고 그 누구들이 고맙다. 침묵은 고행이 아니라 내 나이만큼 함께한 친구를 만나는 일이다.
프랙탈 그림을 보면 참으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브로콜리를 먹을 때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부분이 전체와 닮은 꼴로 무한히 확장됨을 연상하면서 끝까지 끝까지 연상해나간다. 안과 밖이 무의미해지고, 부분과 전체의 구분이 없어지는 지경까지 닿아본다. 그림에서는 2차원이라서 프레임에서 끝이나지만 만약 세상이, 우주가 3차원, 4차원이라면? 아니 그 이상이라면? 차원마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좌표의 개념이 아니라 뒤틀린채로 모든 것이 겹쳐져 있고 중첩되어 있는 것이라면... 세상이, 우주가 그러던지 말던지 아무튼 우리 인간은 먹고사는 걱정을 중심으로 삶을 살아야 하는걸까? 도대체 이런 프랙탈이론은 수학자나 과학자들만의 관심사고 연구결과여야 할까? 컴퓨터만이 그릴 수 있는 도면일 뿐인가? 인간이 저 시작점이라면..
우주, 마음, 영혼, 의식 등의 단어를 글이나 말로 쓸 때 아직은 낯간지럽고 껄끄러운게 있다. 불과 1년 전 랍쇼의 과거행적이 떠오르기도 하거니와 마치 남들과는 다르게 대단한 것을 안다는 양 거들먹거리는 것으로 보일까하는 낯부끄러움도 작용하는 것 같다 또 위와 같은 단어의 사회적 쓰임 역시 물질현실과는 조금은 멀어보이는 뜬구름 관념들이기 때문이리라. 진정 나와 우주의 본성을 보았으며 체득했다면 굳이 느끼고 깨달은 바를 단어로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냥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그리 살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사실 예수나 석가모니도 그리 말이 많았거나 직접 글을 썼을 것 같진 않다. 먼지 한 점, 돌멩이 하나, 꽃 한 송이에서도 나와 우주의 섭리를 알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말과 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