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먼저고, 물질은 필수다
그동안 너무 자주 드러내놓고 살았나보다. 공유, 병렬, 수평의 시선으로 살고 싶어였기에 어쩌면 당연한 행동이었으리라. 이제 말수가 줄고, 표현에 자체검열도 생기고, 비밀이 생긴다. 더 큰 공유, 더 많은 병렬, 더 넓은 수평의 시선을 가지려하니 이 또한 당연한 과정인 듯 싶다. 보이고 들리는 것들에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까지 품으려 할수록 고독은 짙어진다. 그래도 모두 함께 같이 가야한다. 어머니 대지는 늘 우릴 놓아주려 하지만 그래서 인간은 다시 맨발로 태어나나보다. 물처럼 살아야하겠지만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
말수가 줄었다. 그렇게 대화하길 좋아하더니 혀도 입도 이제 지쳤나보다. 화천오지에서 혼자사니 말벗도 없어 더 그런지 모르겠다. 대신 묵언수행하듯 혼자 대화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이런 랍쇼가 스스로 바보같을 때도 있다. 심지어 자기전 노트에다 누군가와 필담까지 나눈다. 같은 단어를 사용해도 뜻이 서로 달라 말이 통하지 않는 친구보다 말이 없어도 감만으로도 서로 이해가 되는 친구는 바로 자기 자신 뿐인 것 같다. 랍쇼는 요즘 고독하지만 외롭지는 않다. 혼자지만 매일 홀로가 아니다. 그 누군가가 고맙고 그 누구들이 고맙다. 침묵은 고행이 아니라 내 나이만큼 함께한 친구를 만나는 일이다.
illust by arapshow.com 그리움은 손톱같다. 보이지 않을만큼만 자기도 모르게 슬금슬금 자란다. 등 가려울 땐 시원하겠지만 가슴 저밀 땐 아플 수도 있다. 스스로 상처내진 말자.
이 괴팍한 양반의 눈물젖은 흐느낌의 꼬부랑은 사랑이자 빛이었더라. 얄팍한 고독감으로 센티해질 땐 고독마저 삭혀버린 우리 영혼의 형제들을 떠올리리 끝을 본다는 건 또다른 무한의 시작 R U Ready?! 끝을 향해 끝없는 항해를 해보자고~ 고독은 그저 돛일 뿐
프랙탈 그림을 보면 참으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브로콜리를 먹을 때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부분이 전체와 닮은 꼴로 무한히 확장됨을 연상하면서 끝까지 끝까지 연상해나간다. 안과 밖이 무의미해지고, 부분과 전체의 구분이 없어지는 지경까지 닿아본다. 그림에서는 2차원이라서 프레임에서 끝이나지만 만약 세상이, 우주가 3차원, 4차원이라면? 아니 그 이상이라면? 차원마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좌표의 개념이 아니라 뒤틀린채로 모든 것이 겹쳐져 있고 중첩되어 있는 것이라면... 세상이, 우주가 그러던지 말던지 아무튼 우리 인간은 먹고사는 걱정을 중심으로 삶을 살아야 하는걸까? 도대체 이런 프랙탈이론은 수학자나 과학자들만의 관심사고 연구결과여야 할까? 컴퓨터만이 그릴 수 있는 도면일 뿐인가? 인간이 저 시작점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