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먼저고, 물질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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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_먼저고/랍쇼그리다

[엽편] 벌거숭이

어랍쇼 2004. 8. 7. 00:00

 

벌거숭이

 

태오는 광학물리학자이면서 변태성욕자였다.

  빛에 대한 그의 솔직한 탐구입장은 뉴턴의 입자설도 호이겐스의 파동설도 아니었다.

오히려 양자역학에서 증명한 입자파동설처럼 과학적으로는 자신의 명예를 충족시켜주는 주제였으며,

 동시에 자신의 은밀한 변태성욕을 충족시켜주는 소재였다.

  빛의 성질인 반사와 굴절은 그에겐 명예와 성욕이란 말과 등치했던 것이다.

  태오는 빛에 대한 오랜 애무와 연구 끝에 옷을 투시하고 사람의 알몸을 볼 수 있는 렌즈를 발명했다.

  원리는 간단했다. 자외선과 적외선의 파장을 이용하여 면이나 화학섬유로 구성되어 있는 의류는

비닐옷처럼 투명하게 보이도록 투시하지만, 자체적으로 열을 방출하는 사람의 피부는

가시광선의 파장으로 반사해내는 원리였다.

  태오는 먼저 테스트를 하기 위해 엉성한 디자인이지만 프로젝트명 ‘빤히’의 베타버전이라 할 수 있는

프로토타입의 안경 하나를 제작했다.

  포르노동영상에서 둥둥 떠다니며 여신들의 나체를 가로막던 모자이크를 죽여버렸던 희열보다

더한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빤히’안경을 착용한채 연구실 밖을 나섰다.

  신천지였다.

  거리를 좌우로 유유히 활보하는 사람들의 알몸이 정오의 햇빛을 받으며 고스란히 그의 눈동자속에

상하로 바쁘게 박히고 있었다.

  다만 ‘빤히’안경은 목걸이나 허리띠 버클, 핸드백장신구 등 금속으로 되어있는 물질은 투시하지 못하여

알몸에 악세사리들이 그대로 착용된 상태의 누드로 보인다는 사실이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그때였다.

  짝!

  태오는 따귀를 맞았다. 정신이 등대처럼 번쩍했다.

  연구실 근처 단골 비디오가게의 점원아가씨였다.

  태오의 시선이 출근하던 그녀의 알몸을 뚫어져라 정신없이 훑고 있다가 그녀에게 발각된 것이었다.

  ‘아차...’

  태오는 남의 옷을 걷어내고 알몸을 볼 수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시선을 감추지 못하고 그대로 노출됐던 것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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