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먼저고, 물질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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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_먼저고/랍쇼그리다

마음의 집은 철거되지 않는다

어랍쇼 2009. 1. 25. 14:47

용산 철거민 투쟁사건.

우선 이 사건으로 고인이 된 분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이는 예의이자 상식인거 같다.
(누구처럼 보고받자마자 명복을 빌기보다는 진상조사와 대책마련을 지시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참으로 대단한 설정을 하고 오신 분들 같다.
(참고: 랍쇼는 사람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영혼의 입장에서
본인이 스스로 삶의 큰 줄기는 나름 정하고 온다고 여기고 있다)

한국의 시국이 어수선한 때에 이러한 사건설정은
현재 한국의 집단의식을 온 몸으로 표현한 사건같다고 느낀다.
철거민이나 전철연이나 공권력이나 말이다.

크게, 누구는 가진자들의 공권력 남용에 의한 살인으로 보는 관점
누구는 철거민을 생트집쟁이이자 반민주시민으로 보는 입장인 것 같다.

책임규명이야 사회적 강자의 입장에서 정리되겠지만, 사회의식의 큰 변화가 없다면
이러한 대치되는 입장차이의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솔직히 랍쇼의 눈에는 이 사건에서 '분노'만이 보인다.

조직화된 사회적 약자는 사회구조의 탓에 무게를 두며,
자신들의 의견을 개무시하는 부도덕하고 부조리한 가진자들과
공권력에 대한 분노심으로 조직력과 투쟁력을 키운다.

공고히 조직화된 공권력은 국민을 위한다는 미사어구로 포장된 대의명분으로
자신들의 질서에 따르지 않는 무리들에 대한 적개심과 폭력대응의 정당성을 키운다.

언론은 이러한 대치국면에서 나오는 핏물을 양분으로 삼고 자라는
온실 속 혈생식물 같은 것이고...(언론얘기는 생략)

물론 랍쇼는 양비양시론자는 아니다. 벌써부터 오해하지 마시라.

내가 오늘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은 보여지는 모든 행위나 사건은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개인의 사건사고 뿐만 아니라 사회의 현상과 국제적인 정세까지 말이다.

극명한 대치속에서 화염병으로 투쟁하는 사람이나 공권력의 곤봉으로 내려치는 사람들 모두
가정으로 돌아가면 하나같이 다정한 아버지이자, 사랑스런 남편일 것이다.
자식에게 늘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기를 가르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얘기할 것이다.
최소한 남에게 피해주는 나쁜 놈은 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왜 이 사회, 나아가 이 지구에서 폭력과 전투, 전쟁은 하루라도 멈추지 않고 있다.
왜일까?




1인당 국민총소득(GNI) 평균을 깍아먹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랍쇼의 멈추지 않는 삶의 화두는 이것이다.
밥벌이나 부의 창출이 아니라 바로 '분노' '평화' '사랑' 에 대한 마음속의 고요한 외침이 매 순간 나를 깨우고 있다.
사건사고들에 대한 원인분석과 단기적 대안이야 분석하고 비교평가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몫인것 같고
이러한 사회현상이 일어날 때 나는 나에게 벌어지는 생각들을 바라보고, 마음과 감정의 변화를 성찰하는게 더 행복하다.

"분노는 나쁘다" "사랑은 좋다" "평화를 바란다"  이러한 생각이 아닌,
분노의 본질과 사랑, 평화 그 자체에 닿고 싶다. 아니 이미 그 자체로 존재하고 싶다.

일련의 각박한 사회현상들이 단순히 돈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보며 남의 일처럼 시큰둥한 반응으로 볼 것이 아니라
TV에서 나오는 사건사고들이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내가 사는 사회현상이자 이웃의 일상이며 이는 바로 나의 얘기이다.

돈문제는 보여지는 현상일뿐, 모든 이들이 경제적/물질적 풍요만을 꿈꾸는 구성원의 사회라면
폭력과 비양심은 어쩔 수 없이 그만한 크기로 자신과 이웃, 사회에게 돌아오게 마련이다.
미움과 분노로 시작된 감정을 남탓과 사회탓으로 돌리기만 한다면 폭력은 필수가 된다.

자신 안에서 펼쳐지는 감정과 생각, 마음의 일렁임을 찬찬히 지켜보고
그 속성과 본질을 알아챈다면, 결코 극단적인 판단은 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 가정의 최소한 의식주를 책임진다는 자기 변명으로, 똑같이 위정자들처럼 사고하고 행동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이 과연 더 갖고, 더 넓고, 더 크고, 더 배부르고, 더 신분상승되기를 바라는
육신만을 위한 의식주 욕망은 아닌가를 먼저 보고
이 사회의 시스템이 강요하는대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적개심과 분노의 대상이 되는 그들처럼 되고 있지는 않은지 자기반성을 해야한다.

물론 이 사회시스템에 편승하여 사회적 강자의 위치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자들은 더 깊은 자기 성찰로
민의와 약자에 대한 귀를 열고, 곤봉보다 먼저 따스한 손길을 내밀 줄 아는 심성의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현대 국가가 태동된지 불과 몇 백년 동안
한 국가의 사회나, 국제사회의 주류 이데올로기로서
눈에 보이는 물질의 양적인 경제성장 마인드가 우세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인간이라면 남녀노소, 피부컬러 상관없이 중요한 가치인
마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훌륭하고 위대한 도구에 대해서는 너무 소홀하고 있다.

용산 철거투쟁사건 역시 마음을 잘못 쓰고 있어 곪아버린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사회역사적 의식의 발로이다.
마음과 의식은 결코 언어로만 알 수 있는 생각이나 감정 따위가 아니다.
나로부터 사회와 국가, 세계정세 나아가 지구의 모습이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채길 바랄 뿐이다.
마음이 무엇인지 알아채고, 마음을 잘 쓸 때 평화는 물론이요,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풍요함까지 자동으로 따라오게 된다.

분노와 그로인한 폭력은 결코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
마음의 평화만이, 마음의 고요함만이 행복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공공의 질서를 위한다며 사회정의라는 미명하에 공권력 폭력을 휘둘러도 질서와 안녕은 오지 않는다
공포정치는 사회진화에 역행하는 구시대적 발상이며, 세련되지 못한 아마추어 위정일 뿐이다.

행복은 결코 누군가에게서 빼어오는 챙취이거나, 누군가를 밟아서 보호해야 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행복은 자신의 마음에서 홀로 농사짓 듯 일궈내는 것이며, 그 행복은 지구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인간에게 이보다 더한 행복과 평화가 있을까?

아무런 구체적 대안도 없는 뜬구름 잡는 배부른 얘기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육신의 허울은 배가 고파도, 정신은 너무도 한가로워서 행복에 겨운
나와는 대화가 되지 않을 사람이겠다. ㅠ.ㅠ

사실 소크라테스는 배가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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